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설 연휴 잘 지내셨나요? 갑진년 청륭의 해, 푸른 용의 기운을 받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주 타이완콘텐츠진흥원과 언론사 ‘오픈북(Openbook閱讀誌)’이 타이완만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을 위해 공동 발표한 ‘스토리를 하는 뮤지엄(說故事的博物館)’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렸는데, 화가 린즈주(林之助) 내외의 러브스토리에 이어 이번주는 프로젝트의 두번째 주제인 장인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인이라고 하지만 수작업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에 국한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물관 중, 가오슝시립역사박물관에서는 젊은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이어가기 위해 결성된 시니어 밴드, 국가영화센터에서는 타이완어 영화를 통해 두각을 드러낸 여배우들, 국가발전위원회 기록보관국에서는 기차를 따라 달리는 소년들,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에서는 올림픽에 출전한 첫 타이완인 선수의 이야기를 추천했습니다. 오늘은 새해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올림픽 선수 장싱셴(張星賢)에 대해 알아봅시다.
타이난에 있는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은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011년 10월 29일 개관했습니다. 구석기시대부터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3차례 이룬 지금까지 타이완의 역사, 정치, 민족, 대외관계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올해로 타이난 성(城) 건립 400주년을 맞아 일본, 네덜란드 등 국내외 20여 개 박물관과 협력해 ‘1624, 세계의 섬 타이완(跨‧1624:世界島臺灣)’ 특별전시를 마련했는데요. 1624년은 타이완이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한 해이자 세계 무대로 진출한 기점입니다. 오는 6월 30일까지 지속되는 이 전시는 과거 중국 또는 식민지의 과점에서 본 역사관에서 벗어나 타이완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지난주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에서 일본의 고교야구 대회인 고시엔에 진출한 첫 타이완팀 ‘카노(KANO)’를 소개해 드렸는데, 카노가 타이완 야구 역사를 바꾼 다음해인 1932년 육상 운동 선수 장싱셴은 일본을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타이완의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 양촨광(楊傳廣), 그리고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 지정(紀政)에 비해 그들의 스승인 장싱셴은 타이완 사람에게 비교적 낯선 존재인데요. 일본과 타이완 사이에 낀 그는 중화민국 대표로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타이완역사박물관은 2013년부터 장싱셴의 가족들로부터 그의 유물, 일기, 사진 등을 기증 받아 2016년 특별전시회를 열고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한 이 위대한 선수의 이야기를 재조명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 운동에 대한 소질을 드러낸 장싱셴은 20살 때 한 경기의 타이완 예선에서 우승해 일본 본선의 진출 자격을 받았으나 타이완인의 신분으로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적나라한 인종 차별을 당했지만 그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일본인을 이겨야 하는 투혼이 활활 타오르면서 일기장에서 “나는 타이완에 있는 모든 일본인을 이기고 일본 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올림픽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인 학우의 협조를 통해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해 정규 훈련을 받았습니다. 대학 시절에 400미터 허들 경기에서 일본의 신기록을 세웠으며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400미터 허들 및 1600m 계주의 일본 대표팀 명단에 올랐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멀리 미국으로 떠넌 그는 일기장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며 올림픽 무대에 오른 소감을 기록했습니다.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 출전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장싱셴은 학교 운동부에 따라 일본 식민지였던 만주국, 조선에 가서 친선 경기에 많이 출전했는데, 중국 다롄(大連)에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운동부의 헤드 코치를 만났고, 코치는 장싱셴에게 졸업 후 철도회사에 취직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졸업 후 그는 코치의 뜻대로 철도회사의 임용시험에 합격해 운동부에 가입했습니다. 1936년 또 다시 일본 올림픽 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첫 타이완인 선수에 이어 이번은 만주국 선발대회에서 나온 첫 선수였습니다.
장싱셴은 전 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봤는데, 가장 그리운 음식은 스키야키, 최악의 음식은 파스타였다고 합니다. 외국에 있어도 항상 일본 식당을 찾아가 속을 따뜻하게 하는 스키야기를 먹곤 했습니다. 얇게 자른 고기와 채소를 얕은 냄비에 삶은 스키야키는 1930년대 세련된 ‘신식 요리’로 여겨져 타이완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낯선 타지에서 힘들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에게는 차가운 서양 요리보다 인간미가 넘치는 스키야키야말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최고의 미식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장싱셴은 가족과 함께 타이완에 돌아와 전국대회에서 타이완팀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타이중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타이완체육회, 타이완 육상운동 협회 등을 결성해 인재육성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십종 경기 은메달을 딴 양촨광,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80미터 허들 동메달을 딴 지정 등 메달리스트들을 지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타이완 육상 경기계의 스타’, ‘육상 경기의 거인’이라 불리지만 장싱셴은 중화민국의 올림픽 대표팀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어도 대표팀 코치의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일본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고 일본 대표 선수로서 2차례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일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고 친구도 대부분 일본인이다. 따라서 일본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중국인에게 나는 괘씸한 중국인일 것이다.”, “일본에 할양되고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타이완은 광복 후 중화민국으로 반환되었는데, 나는 중국인 신분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왠지 광복된 지 30년이 된 지금도 입양된 아이처럼 느껴진다”
장싱셴의 일생은 파란만장한 타이완 근대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친 타이완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조국을 대표해 올림픽 무대에 다시 오를 기회를 놓쳐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점차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타이완역사박물관은 장싱셴 가족이 제공한 일기와 회고록을 정리해 지난 2020년 《나의 스포츠 라이프》를 출판했고 타이완 스포츠계의 레전드 선수의 이야기를 보완했습니다. 지금은 좋은 스토리텔러만 부족합니다. 장싱셴의 이야기는 야구팀 카노처럼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져 더 큰 주목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야기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엔딩곡으로 타이완사람으로서의 무력감을 심야버스로 묘사하는 노래 소화기 밴드(滅火器)의 ‘장거리 심야버스(長途夜車)’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說故事的博物館‧職人篇》臺灣第一位奧運選手張星賢,他的抱負與遺憾ft. 國立臺灣歷史博物館」,OPENBOOK閱讀誌。
2. 「流轉於世界各地,創下多項田徑紀錄!臺灣的奧運第一人──張星賢」,時空旅行社。
3. 劉維瑛,「當他與世界短兵相接──首位參加奧運的臺灣人張星賢」,琅琅閱讀。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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