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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루웨이(滷味)를 품는 계절

  • 2023.12.29
랜선 미식회
겨울 대표 샤오츠, 루웨이.[사진 Rti 손전홍]

[*아래 글은 실제 당일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꼭 먹어야 할 타이완 전통 음식부터 각 지역 특산물과 현대 감각을 더한 퓨전 타이완 음식까지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식을 직접 맛보고 생생하게 전해드리는 매주 금요일 랜선미식회입니다.  안녕하세요 랜선미식회 진행자 손전홍입니다

타이완을 다녀온 외국인 여행객은 누구 할 것 없이 타이완의 매력으로 작은 먹거리를 뜻하는 ‘샤오츠(小吃)’를 꼽습니다. 타이완의 샤오츠는 보통 거리 노점상이나 야시장에서 판매되는 저렴하고 간편한 음식을 말해요. 한국으로 치면 떡볶이나 닭꼬치처럼 샤오츠는 가격이 저렴하고,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하지만 맛있고 신선하며 저렴한 다양한 샤오츠는 배고픈 타이완 학생들과 스트레스받은 직장인들에겐 힐링이자 소울 푸드입니다. 계절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여러 군데에서 느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길거리를 메우고 있는 다양한 샤오츠에서도 겨울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따끈따끈해 보이는 샤오츠에 마음이 가니 말입니다. 타이완의 기온이 한국보다 온화하고 따뜻하다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 패딩을 입어야할 정도로 날씨가 제법 스산하고 춥습니다. 이런 겨울을 버텨내는 타이완 사람들만의 비결 중 하나는 샤오츠를 먹는 것인데요. 그 중에서 겨울 최고의 샤오츠는 단연 각종 재료를 간장 국물에 데친 김이 모락모락나는 루웨이(滷味)입니다.

같은 음식이더라도 누가, 언제,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플레이팅을 하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입니다. 타이완인이 사랑하는 겨울 대표 샤오츠, 루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부, 라면사리 등 추가 재료부터 익힘 정도까지 루웨이 가게마다 맛은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시대에 따라 맛과 재료가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이것 하나는 같습니다. 루웨이가 타이완인의 소울 푸드라는 사실 하나만은 변함없습니다. 

오늘 랜선미식회는 맛에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한번 더 놀라는 타이완 대표 샤오츠, 루웨이의 매력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타이완인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타이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억 한 조각에 루웨이가 있습니다. 루웨이는 타이완의 전통적인 샤오츠 중 하나로, 오늘날 흔히 먹는 루웨이는 머나먼 옛날 황제의 궁궐 밖 행차에서 황제를 모시고 지킨 시위대(侍衛)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황제들의 궁궐 밖 행차에는 어김없이 수백명의 시위대가 호위했습니다. 황제의 궐밖 행차에 함께하던 시위대나 의종(儀從)을 가리켜 ‘노부(鹵簿,타이완식발음 루보오)’라고 칭했습니다. 황제의 궐밖 행차에서 황제는 생선, 닭, 오리 부위에서도 가장 좋은 부위를 먹고 남은 부위는 아랫사람들인 노부,루보오가 먹게 했습니다.  황제가 남긴 음식은 신임받는 관료들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시위대나 의종은 궐밖 행차때 황제가 남긴 여러가지 재료들을 간장에 넣고 졸여 먹었고, 이것이 지금의 루웨이의 유래가 됐다고 해요. 루웨이의 이름의 유래는 황제의 궐밖 행차에 함께하던 시위대나 의종인 노부, 즉 루보오(鹵薄)가 먹던 맛이라고 해서, 노부 ‘루보오’에 첫 글자 ‘루’에 맛을 뜻하는 중국어 ‘웨이(味)’를 합쳐, 루보오(鹵薄)가 먹던 맛을 뜻하는 ‘루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황제가 남은 음식을 하사하는 것에 유래한 루웨이는 중국에서 태어나 타이완인의 조상들과 타이완으로 건너오게 됐고, 여러가지 재료를 간장에 넣고 졸이는 루웨이의 조리법 덕분에 냉장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당장 먹지 않을 식재료를 장기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그저 음식을 자연상태에서 오래 보존시키는 음식에 가깝던 루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가지 재료를 저렴하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는 점으로 타이완 전 국민의 샤오츠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런 루웨이는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사랑하는 야식이 됐습니다.

타이완인의 대표적인 컴포트 푸드, 야식으로 자리잡은 루웨이는 국민음료인 버블티, 전주나이차(珍珠奶茶)만큼 타이완에서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음식입니다. 루웨이는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루웨이는 크게 렁루웨이(冷滷味), 자러루웨이(加熱滷味), 쉰옌루웨(煙燻滷味) 이 세가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먼저 차가운 루웨이라는 뜻에 렁루웨이는 이름처럼 재료들을 간장에 삶아서 차갑게 식혀서 파는 루웨이입니다. 이와 달리 가열한 루웨이라는 뜻에 지아러루웨이는 손님들이 고른 재료들을 루수이(滷水)라 불리는 간장 국물에 넣고 데친 따뜻한 루웨이입니다. 훈연 루웨이라는 뜻에 쉰옌루웨이는 훈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스모크 향이 조화를 이룬 루웨이입니다. 냉루웨이, 훈제루웨이 종류가 다양하지만 겨울엔 역시 따끈한 지아러루웨이가 인기가 가장 많습니다.

지아러루웨이는 특제 간장 국물 루수이(滷水)가 담겨 있는 커다란 솥에 넣어서 데쳐 먹을 수 있는 재료는 모두 넣는다고 보면 됩니다.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재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보아도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도 있습니다. 소고기와 닭고기, 양고기를 비롯한 육고기는 물론이고 각종 채소와 버섯이며 두부, 당면, 어묵까지 더하면 그 종류는 수백 가지에 이릅니다.

28일 타이베이의 한 루웨이 전문점에 다양한 루웨이 재료가 진열돼 있다. [사진 Rti손전홍]

타이완인들이 뤠웨이를 먹을 때 꼭 넣어먹는 재료는 무엇일까요? 소셜 빅데이터를 활용해 타이완 국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이슈를 분석하는 타이완의 소셜 랩(社群實驗室,Social Lab)이 지난 6월 발표한 타이완인들이 직접 뽑은 루웨이 재료 인기 순위에서 두부가 가장 좋아하는 루웨이 식재료 1위를 차지했습니다.

타이완 소셜 랩에서 지난 3월 13일~6월 13일까지 대략 3개월 동안 타이완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대화방, 인스타그램 등 SNS 게시 글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타이완 네티즌 사이에서 루웨이 식재료를 논할 때 두부는 타이완 네티즌 사이에서 언급된 횟수만 총 2천 272건으로 가장 많이 거론됐고, 두부는 호불호 없는 루웨이 식재료이자, 루웨이를 먹을 때 꼭 넣어 먹야하는 식재료 1위로 꼽혔습니다. 그 뒤를 이어 말린 두부 ‘더우간(豆干,2,057건)’, 돼지피떡 ‘미시에(米血,1,749건)’, 오리피 ‘야시에(鴨血,1,352건)’, 오리날개 ‘야츠(鴨翅,1,195건), 어묵(甜不辣,1,016건), 돼지 대창(大腸,995건), 양배추(高麗菜,987건)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무한한 조합이 가능한 루웨이는 다양한 식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샤오츠입니다.

어제(28일) 목요일 점심, ‘타이베이 루웨이 맛집’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타이베이 난강 기차역 근처에 있는 루웨이 전문점을 방문했습니다. 1990년 난강 기차역 인근에서 문을 연 이 가게는 30여년 째 수많은 고객에게 정겨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각종 재료를 가지런히 진열해 놓고 있는 진열대를 볼 수 있습니다.  삶은 달걀, 어묵, 무 등 종류가 정말 다양합니다.

28일 타이베이의 한 루웨이 전문점에 다양한 루웨이 재료가 진열돼 있다. [사진 Rti손전홍]

원하는 재료를 골라 스테인레스 쟁반에 담아 직원분께 드리면 재료별로 값을 매겨 계산해 주시는 데 푸짐하게 담아도 웬만해선 한국 돈으로 10000원을 넘지 않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저는 콜라겐 덩어리 쫀득하고 꼬들한 스지(소힘줄), 두부, 무, 돼지 귀 등 10가지가 넘는 재료를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양껏 담았지만 뉴타이완 달러 380원 (한국 돈으로 약 1만 5천 9백원)이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루웨이는 테이블이 없는 가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봉지에 담아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가 방문한 가게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가게 안에서 갓 데친 따끈한 루웨이를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 앞 루웨이 가게처럼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곳입니다. 랜선미식회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주 금요일 새로운 타이완 음식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손전홍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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