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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타이난 외곽의 의사 우신롱(吳新榮)의 영화 이야기: 영화관에서의 데이트, 가족 오락으로서의 영화

  • 2023.12.12
대만주간신보
타이난 시골의사 우신롱(吳新榮)의 일기는 2007년 타이난에 소재한 국립타이완문학관에서 전집 출판되었다. - 사진: 국립타이완문학관

타이완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 진마장의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주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타이완에서 영화는 그 어떤 장르의 예술 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인데요. 진마장 60주년인 올해가 끝나기 전,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오늘부터 일제시기 타이난 외곽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의사 우신롱(吳新榮)이 당시 타이난 시내를 중심으로 영화를 접한 이야기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영화관에서의 데이트 다들 해본 적 있으실까요? 

“그 시절 그 땐 그렇게 갈 데가 없었는지/언제나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었죠/돈 오백원이 어디냐고 난 고집을 피웠지만/사실은 좀 더 일찍 그대를 보고파….”

1996년 나온 이문세의 ‘조조할인’ 가사입니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만나 데이트했던 옛 기억을 노래한 히트곡이지요. ‘영화관 데이트’에 대한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인데요. 노래 가사처럼 지난 수십년간 영화관은 최고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영화표 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고, 어색함 없이 1~2시간씩 옆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데다, 영화관을 나와 함께 본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으니까요. 청춘남녀가 갈 만한 다른 데이트 코스가 많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밥을 먹고, 두번째 만남에서 영화관을 가는 식의 ‘공식’이 생겨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일제시기 타이완의 시골의사 우신롱도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즐겼다고 합니다. 우신롱의 일기에서는 영화관에서 전처 마오쉬에펀(毛雪芬)과 결혼 전 교제 했던 이야기도 엿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매해주는 걸 좋아했던 우신롱은 좋은 인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녀 당사자 쌍방이 결혼을 전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정해진 통로로 영화관을 소개해줬다는 사실도 일기에서 발견할 수 있구요. 당시 우신롱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병원에서는 ‘춤, 음악, 영화 저녁 파티’를 열었어. 여기에는 친구 링탕과 자오구이 군이 나의 초대로 놀러왔지. 정말 기뻤어.”

결혼 후 타이완에서 병원을 개업한 우신롱은 여기에 아내 마오쉬에펀이 첫 아들을 출산하는 경사까지 함께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 우신롱은 자신의 일기에서 돈독한 부부 사이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죠. 

“아들이 있으니 귀엽고, 아내가 있으니 위로가 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들의 성장을 보는 것. 걷기 시작하고, 젖을 떼고, 의사 표현도 가능하다. 저녁 식사 후에 방에서 쉬고, 아내와 셋이서 시시덕거리며, 어린이용 극을 보자고 조른다. 이것이야 말로 행복아닌가!”

아내와 함께 데이트를 했던 영화관을 결혼 후 행복한 가정을 꾸린 후에도 우신롱은 가족과 함께 계속해서 다닙니다. 하루는 아내와 아들을 동반해 중국영화 <건륭군유강남(乾隆君遊江南)>을 보러 갔습니다. 

“오늘은 왕진도 많아 수입이 적집 않다. 저녁에 아내와 함께 시내 영화관에서 <건륭군유강남>을 보았다. 중국의 풍속을 조금 배운거 말고는 남는 게 거의 없었다.”

1935년 8월 타이난에 태풍이 부는 동안에도 우신롱은 아내와 처제 일행과 함께 타이난 시내로 영화를 보러 갔을 만큼, 결혼과 출산 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과 혹은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영화를 보았습니다. 특히 우신롱과 그의 아내는 친구들이 평생의 짝을 찾는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데 상당히 협조적이었는데, 중매자 역할을 기꺼이 맡으며 우신롱 부부는 중매를 하는 남녀를 데리고 가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여 양측의 마음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1930년대 타이완에는 신여성들의 자유연애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이라면 무조건 가문이나 남성 측에서 결정하던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는 신여성, 특히 새로운 서구 문화와 자유를 중시하는 신문화를 가진 여성에게는 반드시 여성의 의사를 존중하고 예의있게 물어봐야 했는데요. 이 때 바로 영화관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중매자 역할을 자처한 우신롱은 여자측을 영화관에 초대합니다. 이때 미리 와있었던 남자측은 여자가 영화관에 등장한 것을 확인한 후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에 나타나는 것이죠. 남녀가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 그 자체에 집중한다기 보다, 어두운 영화관의 분위기를 통해 미혼남녀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매에 성공한 우신롱 부부는 새로운 신혼부부와 함께 영화관에 자주 놀러가 문화 생활을 즐겼습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잠시, 우신롱의 부인인 마오쉬에펀은 1942년 세상을 떠납니다. 처를 잃은 슬픔을 쓴 <망처기(亡妻記)>는 후대 사람들에게 큰 칭송을 받았는데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 년여가 지난 1943년 7월 우신롱은 결국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가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한 때는 일본이 한창 전쟁 중이었던 시기로, 두번째 아내와 신혼여행은 못갈지 언정 영화를 보는 데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안핑(安平)에서 사온 생선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미야코좌(宮古座)에 가서 보려고 했던 영화 <소원을 비는 합창>을 보려했으나, 아내가 이비자관에서 <수호의 그림자>를 보자고했다. 가끔 싸움이 격렬한 살벌한 시대극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오래전 영화라 매력이 없다.”

역사학사 천원송의 연구 통계에 따르면,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시골의사 우신롱이 2년간 본 영화는 두 부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일본 식민정부의 연관된 각종 교화단체가 각 지역의 공회당에서 방영한 국책 및 사회교화용 영화이고, 나머지는 중국영화입니다. 그러나 이후 1936년부터 전처인 마오쉬에펀이 사망하기 전인 1942년 3월까지 그가 본 영화를 가만 보면 중국영화 비율이 대폭 낮아졌고 미국과 유럽이나 일본에서 넘어온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우신롱은 아내와의 결혼 전 데이트, 결혼 후 가족들과의 나들이, 이후 두번째 처와의 시간 모두 영화관에서 보냈습니다.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인들의 연애나 중매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우신롱은 영화관을 매개로 남녀를 이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일본 식민 통치하에서 우신롱에게 영화관은 자신의 사랑과 우정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사회적 공간이었지만, 전쟁 후 국민당의 통치 하에서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삶을 살자 영화관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활동이나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도피처로 기능했죠. 2.28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국민정부에 의해 낙인이 찍혔을 때 우신롱은 영화를 보며 국내의 정치적 굴레를 벗어나 천륜을 공유하고 보다 넓은 세계 문화와 함께 호흡하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일제시기이던 국민당 통치 시기이던 우신롱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우신롱의 처 린롱량(林榮樑)은 남편 우신롱의 10주기 추모록에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아이들은 나날이 자랐다. 가장 큰 것은 벌써 대학생이고, 가장 작은 것은 초등학생이었다.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소리 높여 합창하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真善美)> 럼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경을 우리 집에서 공연하곤 했는데, 이 아름다운 추억은 내 생애에서 가장 잊을 수 없고 즐거웠던 것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남편의 유머는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었다. 비록 그들에게 물질적인 즐거움을 줄 수는 없지만, 가정에는 따뜻함이 있고,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있다면, 나는 그들이 부족한 모성애를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1967년에 개봉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언급하며 린 씨는 자신의 남편 우신롱의 모습을 기억했습니다. 

영화 관람을 통해 내외세계의 변화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구상을 만들어내었던 우신롱은 비록 영화인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그의 일기는 각기 다른 정권을 뛰어넘는 시골 문화인 무리들이 타이난 시내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상사와 함께 좌불안석인 사회변동을 여실히 드러내고 교양이자 가족의 레저, 또 데이트 등 일상적이면서도 다양한 역할을 한 영화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 참고문헌

陳文松 《來去府城透透氣:一九三○~一九六○年代文青醫生吳新榮的日常娛樂三部曲》 蔚藍文化, 2019.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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