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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의 날] 메이리다오 사건 직후… 일가족 학살 사건

  • 2023.12.13
랜드마크 원정대
린이슝(林義雄) 일가족, 오른쪽부터는 린이슝, 쌍둥이 딸, 장녀, 부인, 어머니 - 사진: 미제사건조사사무실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이번주 <포르모사 문학관> 시간에서 타이완의 민주화 역사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사실 메이리다오 사건에서 반란좌로 기소된 핵심 인물 8명의 군사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한 집안을 피로 물들인 일가족 학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던 군사재판은 타이완의 젊은 세대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정치 인재를 육성시켜 훗날 민주화를 위한 튼튼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오늘은 메이리다오 군사재판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 그리고 메이리다오 사건 후 타이완의 민주화 발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28이란 날짜하면 1947년에 일어난 민중봉기 228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거죠. 그러나 228사건 외에 1980년 2월 28일 또 하나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이날은 메이리다오 잡지사 핵심 인물 8명의 하나인 린이슝(林義雄)이 구금된 지 77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린이슝의 부인 방수민(方素敏)이 타이베이 징메이(景美)에 있던 군사법원에 가서 재판을 방청했고, 점심시간 쯤 집에 세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아무도 받지 않아 린이슝의 보좌관 톈츄진(田秋堇)에게 집에 가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톈츄진은 현장에 도착하자 죽어가고 있었던 린이슝의 9살 장녀 린환쥔(林奐均)를 보고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린이슝의 어머니와 7살 쌍둥이 딸을 찾지는 못했고 린이슝의 지인과 결찰이 현장에 도착해야 지하실에서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린이슝의 아내는 톈츄진의 권유로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계속 군사법원에 있었기에 재난을 면했으며, 린이슝의 장녀는 9시간 동안의 응급수술을 받은 후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사건 당일은 큰 의미를 지닌 2월 28일인 데다가 군사재판 전이었고 메이리다오 잡지사가 바로 린이슝 집 위층에 있었기 때문에 국민당에 반항하던 당외인사(黨外人士)들은 학살 사건을 정부의 계획으로 의심했습니다. 또한 정치범이었던 린이슝의 집과 전화는 모두 정부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는데 린이슝의 집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범인은 정부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메이리다오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음 학살 목표가 될까봐 극도의 공포에 빠졌습니다. 반대로 당시 린이슝은 이미 2개월 동안 구금되어 있었는데 노인과 어린 아이만 있는 집을 감시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수사방법이 없었던 1980년, 큰 주목을 받을 만큼 린이슝 집은 항상 경찰, 사건 관계자, 정보요원, 정부 고위직, 언론 등으로 가득차 있어 현장을 크게 파괴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아무런 유용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고 증언에 따라 용의자 몇 명을 찾았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끝났습니다. 유가족이자 메이리다오 사건의 피고인 린이슝은 1980년 3월 18일부터 시작된 군사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이번 재판은 전 국민의 단결과 사회 평화를 파괴하는 그림자를 없애기를 바란다”며 “산 자의 안녕과 고인의 안식을 빈다”고 말했습니다.

학살 사건으로 인해 메이리다오 군사재판에 대한 타이완 국민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며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던 많은 젊은 사람들도 민주화를 쟁취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포청천이라 불렸던 천딩난(陳定南) 전 법무장관은 사업을 포기해 정치에 투신했으며, 서정적인 에세이와 시만 쓰던 작가 비주(碧竹)도 린솽부(林雙不)라는 필명으로 재출발해 사회운동과 정치개혁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학살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인 1981년, 메이리다오 잡지사에 여러 차례로 돈을 기부하고 잡지의 영어판 번역에 크게 기여한 천원청(陳文成) 교수는 미국에서 타이완으로 돌아와 중화민국 국방부 산하의 정보기관 경비총사령부(警備總司令部)의 요원과 만난 후 다음날 국립타이완대학교 캠퍼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정부는 천원청이 죄를 짓고 형벌을 두려워해서 자살했다고 밝힌 반면, 그의 가족과 부검에 참여한 미국 법의학자는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4년 타이완계 미국인 작가 류이량(劉宜良, 필명 江南 쟝난)은 미국에서 중화민국 국방부와 협력한 폭력조직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천원청과 쟝난의 사망은 린이슝 일가족의 학살 사건을 생각하게 하며 이러한 사건 모두 국민당 정부의 자각극이라는 추측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민주화 이후 정부는 여러 차례로 린이슝 일가족 학살 사건과 천원청 사건의 재수사를 진행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올해 2월 감찰원이 발표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정부의 정보요원이 학살 사건에 참여한 직접증거는 발견되지 않으나 당시 경비총사령부는 6가지 중대한 과실이 있었습니다. 각각은 사법 절차에 대한 개입, 조사 방향에 대한 오도, 수사 절차에 대한 방해, 여론 조작, 사건 관련자에 대한 비호, 폭력조직과 협력 등이 있습니다. 3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끔찍한 학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습니다.

린이슝이 투옥된 후 그의 아내는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집을 팔려고 했는데 타이완 기독장로교회와 해외 기독교 신도들은 돈을 모아 이 집을 구입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해당 교회는 현재 타이베이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 맞은편에 있는 이광교회(義光教會)입니다. 매년 2월 28일 오전 9시 이광교회에서 추모예배를 개최한 후 이란(宜蘭)에 위치한 린가묘지에서 추모행사를 합니다.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린이슝의 장녀는 미국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미국인 선교사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매년 학살 사건의 추모행사에서 피아노 등 음악연주를 통해 할머니와 쌍둥이 동생을 추모합니다.

학살 사건과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 많은 시위 참여자, 이들의 변호인단과 가족들이 타이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린이슝의 아내 방수민도 그 중의 한 명이었는데, 1983년 무소속으로 입법위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국사관 관장 천이선(陳儀深)은 “메이리다오 사건은 장징궈 전 총통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며 “공개 재판은 스크립트 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 국민을 향한 정치 계몽 수업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타이완은 20세기 후반 제3의 민주화 물결을 타고 1987년 계엄령을 해제했고 2000년, 2008년, 2016년 선거를 통해 3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내년 1월 13일에 치러질 차기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옛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타이완 민주주의의 꽃은 지금처럼 만개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유, 민주, 인권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로 얻은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잘 간직해야 하죠.

린이슝 일가족 학살 사건은 타이완 영화 <대담하거나, 타락하거나, 아름다운(血觀音, 혈관음)>으로 각색되었는데, 이 영화는 타이완의 여러 가지 역사사건을 바탕으로 정계와 상업계에서 활약하는 브로커의 이야기를 다루며 2017년 금마장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여러 번 봐도 다시 보고 싶은 인생영화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엔딩곡으로 린이슝의 장녀 린환쥔의 노래 ‘넌 내 사랑이야(你是我最愛)’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린환쥔은 남편, 귀여운 5명 딸과 함께 타이완에서 기독교 음악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미제인 학살 사건은 드라마 <시그널>처럼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吳乃德,《臺灣最好的時刻,1977-1987:民族記憶美麗島》
2. 吳哲宜,「林宅血案6大黑幕曝光!真兇是專業殺手『軍方鷹派涉重嫌』,監委曝:1物成破案關鍵證據」,風傳媒。
3. 王南琦,〈沒有真相哪來和解?〉。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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