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지하철 그린라인과 오렌지라인이 만나는 구팅역(古亭). 타이베이 중에서도 구팅역 주변에는 일제시기 건축물들이 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식 흑색 목조 건물이 인상적인 기주암(紀州庵)은 현재는 타이완 현대문학의 성지로 알려져있으나, 원래는 일본 간사이 출신의 한 젊은이가 1897년 타이완이라는 낯선 섬에 차린 첫 음식점 건물입니다. 구팅역 2번 출구에서 멀지않은 야초거실옥(野草居室屋)이란 음식점은 일제시기 타이베이제국대학(현 국립타이완대학)의 학생과 선생들이 학문적인 교류를 나누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현재 음식점 안은 1921년 완공된 타이베이철도주식회사의 만신철로(萬新鐵路, 완화(萬華)와 신디엔(新店) 사이를 연결하는 철로)를 재현해놓아 일제시기 당시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구팅역 주변에 일제시기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데는 이 일대가 요즘말로 좋은 ‘학군'이었기 때문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타이베이제국대학이 멀지 않았던 데다가 당시 타이완의 명문 고등학교인 ‘타이완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台灣總督府台北高等學校)’가 있었습니다. 바로 현재 국립타이완사범대학의 전신인 학교입니다.
1922년 설립된 7년제 명문 고등학교, ‘타이완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는 바로 옆에 소재해 있는 타이완의 유일한 대학인 타이완제국대학의 예과 성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원칙적으로 제국대학 시험을 면제받고 바로 입학 가능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중화민국의 7-9대 총통이었던 고 리덩후이(李登輝)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죠.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식민지 타이완의 명문, 타이완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 교육령’이 공포된 다이쇼 11년인 1922년. ‘타이완 총독부 고등학교 규칙' 등 기존에는 없던 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법령이 공포되면서 4월 23일 타이완 총독부 타이베이 고등학교는 개교식과 1회 입학식을 가졌습니다. 일본에 소재한 도쿄, 무사시 고등학교와 함께 타이베이 고등학교는 일본 최초의 7년제 고등힉교였니다. 입학식 당시 아직 교사를 완공하지 못했던터라 일본인이 다니는 타이베이 제1중학교의 한 구석을 빌려 식을 치뤄야 했습니다. 1, 2학년 각각 40명씩 모집해 입학식을 치루고 그 이튿날인 4월 25일 첫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925년이 되자 학교는 점점 그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학교에는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칠성산七星山'의 이름을 따 ‘칠성료(七星寮)’라는 기숙사를 설립했고, 학생들의 취미활동을 위해 토론, 문예, 여행, 테니스부터 수영, 음악, 야구, 스모까지 15개의 동아리를 결성합니다. 이듬해에는 타이베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생 잡지인 <상풍(翔風)>을 창간하기에 이르죠. 1926년 교사가 완공되면서, 타이베이 고등학교는 지금의 구팅역 주변으로 교사를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학교 시설은 계속해서 설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체육관은 1928년에 준공되었고, 그 이듬해는 수영장이 지어졌습니다. 강연당과 기숙사 건물도 증축해 1930년 전까지 독립된 학교로서의 자태를 본격적으로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립대만사범대학으로 바뀌었지만 오늘날 캠퍼스에서는 여전히 과거 고등학교 건물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1928년 에 완공된 본관 건물은 오늘날 사범대학에서 행정 빌딩으로 사용중이고 1929년 건설되었을 당시 전교생과 교직원을 모두 수용가능했덛 강연당도 여전히 소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는 당시 모든 타이완인들의 열망이었습니다. 전체 졸업생 2,400명 중 타이완인은 559명으로 전체 졸업생에 1/4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타이베이 고등학교는 제국대학의 예비 과정,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제국대학에 시험 없이 입학 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한 타이완인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꽤 치열했죠. 이 학교를 졸업한 가와사키 츠요시 씨는 "0.1% 타이완인만 올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심지어 일본에 사는 일본 학생들도 이 학교에 시험을 치르러 해협을 건너 왔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타이베이고등학교는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즉 자유인문을 중시하는 교육 제도를 수용해 시행했기 때문에 학생 개인의 흥미를 탐색하도록 학교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읽는 책은 대부분 도쿄에서 갓 출판된 책이죠. 리덩후이 전 총통은 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습니다.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 시리즈가 당시 유행했습니다. 나는 700~800권의 책을 갖고 있었고, 그 중에는 외국고전들도 포함되었죠. 친구들과 괴테, 칸트 외 다른 서양철학자들에 관해 토론했습니다. 만약에 잘 모르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부터 르네상스와 혁명까지 책 목록을 정리했습니다. 영어 선생님인 시마다 킨지(Shimada Kinji)가 내 지도선생님이었는데, 그는 토마스 칼라일( Thomas Carlyle)의 원서를 가르쳤고, 괴테에도 정통했습니다. 주로 독일식으로 글을 써서 매우 심오했죠.”
타이베이 고등학교 출신 구라모토 히토시(Kuramoto Hitoshi) 씨는 당시 학교에 있던 음악방을 회고했습니다.
“기숙사 안에는 운동방, 놀이방 등이 있었는데, 그 중 음악 레코드 방이 가장 비쌌습니다. 음반 하나가 당시 1,000엔, 오늘날 10,000엔에 가까운 금액었죠. 베토벤 교향곡 6번과 같은 교향곡을 모아두었습니다. 학교가 영어와 독일어에 관심을 많이 두어서 특히 독일어 노래 부르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이렇게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뿐만 아니라 교양와 취미를 양성할 수 있는 복합적인 배움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 시작하면서 학교에도 군사훈련 과목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학생들은 '예비 군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총을 다루는 법을 훈련받고, 검도도 배워야 했죠. 학교의 기존 모토였던 인문 자유는 전쟁이 시작되자 퇴색되고 만 것입니다.
1945년 일본 천황이 일본의 항복을 선언하자, 그 해 타이베이 고등학교는 ‘대만 성립 타이베이 고급중학’으로 재개편되었습니다. 그리고 타이완이 국민당 정부의 지배하에 들어서자 민국 38년인 1949년 7월, 타이베이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생이 졸업한 후 학교는 폐교되었습니다.
2012년 지금의 사범대에서는 타이베이 고등학교 90주년 기념 모임 주최했습니다. 비록 타이베이고등학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사범대가 학교 역사를 기억하는데 공헌하고 있죠. 타이베이 고등학교 개교 9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다큐멘터리(The glory of Taihouku higher school)에서는 90을 훌쩍 넘긴 동창들이 모여 교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가, ‘사자머리산에서(獅子頭山に)’는 학교 주변 산의 정기와 학업의 기쁨, 청춘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졸업한지 6, 70년이 훌쩍 지나 타이완은 국민당의 지배로 정치 체제도 바뀌었습니다만, 일제시기 타이베이 고등학교에 재학했던 그 시대를 생생하게 재연해내듯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또렷한 발음으로 일본어로 된 교가를 부릅니다.
참고자료
타이베이 고등학교 개교 9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The glory of Taihouku higher school"
교가 음원: 국립타이완사범대학 도서관 아카이브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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