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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포(苗圃)에서 타이베이 식물원(植物園)으로

  • 2023.04.04
대만주간신보
타이완총독부 식산국에서 설치한 묘포(苗圃) 안 연못 풍경. 1896년 설치된 묘포는 1921년 타이베이 식물원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다양한 타이완 식물의 집합소로 자리하고 있다.

타이베이 남서쪽. 타이완 총통부와 50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 소남문(小南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는 ‘타이베이 식물원’은 약 8 헥타르의 공간 안에 타이완의 각종 식물과 보육 관련 정보를 총체적으로 갖고 있는 장소입니다. 타이베이 식물원의 내부는 식물분류시스템과 식물의 습성에 따라 구분해서 각 구역마다 다른 주제의 식물들이 모여있고, 상세한 식물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식물원 전시를 참관할 수 있도록 하고있죠. 또한 식물원 곳곳 높은 나무 잔길이나 숲 사이의 작은 자갈길이 등이 숨어 있어 방문객들이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타이베이 식물원'의 시작은 일제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타이완총독부는 1896년 ‘타이베이 묘포(苗圃, 묘목을 기르는 밭)'와 모수원(母樹, 식물이 번식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암나무, 어미나무)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이 묘포와 모수원이 1921년 정식으로 ‘타이베이 식물원'으로 개칭해 타이완 최초의 식물원이 되었습니다. 100년에 걸친 역사를 갖고 있는 식물원은 타이베이의 일반 공원과 달리 식물 관련 과학적 조사연구와 기록을 소장해 완전한 식물 보육 정보를 제공하는 장소로 현재까지 기능하고 있습니다. 4월 5일 한국의 식목일과 타이완의 청명절을 맞아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타이완 식물 연구와 보존의 집합소, 타이베이 식물원의 일제시기 역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우선 메이지 28년(1895)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 정부가 타이완을 지배하기 시작한 초기에 가로수나 정원수의 묘목을 심기 위해 당시 타이완의 농업, 공업, 상업, 어업, 임업, 광업 등을 담당하던 타이완총독부 식산국(殖產局)에서 ‘묘포’를 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소남문 옆의 기존 육군 부지를 묘포 부지로 선정하였습니다. 1년 뒤인 1896년 1월 6일 5 헥타르가 채 안되는 땅에 정식으로 묘포를 설치했고, 당시 묘포는 주로 타이완총독부 식산국의 임업시험장에서 관리했습니다. 이때 수집된 묘목의 종류는 주로 일본 도쿄 신주쿠에 소재한 고궁의 정원(御苑)이나 고마바(駒場) 농과대학 임학과에서 기증받았으며, 그 외 일부는 동남아시아 일본 각 영사관의 협조를 받아 들여왔습니다. 이곳 묘포에서 재배된 약 19만 2,269그루의 나무들은 이후 타이완 도처의 각 관공서, 학교, 공원, 민간 주택 정원 및 도시에 가로수로 증여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메이지 32년(1899) 육군병원 건설로 인해 묘포가 한때 타이베이의 대룡통(大龍峒)과 원산(圓山) 부근으로 이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메이지 33년(1900)에 타이완총독부는 다시 현재 타이베이 식물원의 부지를 매입하여 묘목을 재배하고 기르는 업무 외에 묘목 실험도 진행하였습니다. 이 후 ‘타이베이 묘포’는 계속해서 토지를 매입하고 확장하여 한때 15헥타르의 부지에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 5 헥타르가 채 안됐던 초창기 묘포에 비해 토지 면적이 세 배나 들어난 것이죠. 그러면서 일부 묘목을 재배는 것 외에 나머지 토지는 모두 구역을 나누어 모수원으로 만들기도 하고, 저지대는 굴착해서 연못을 조성해 연못 주변으로 타이완과 일본의 모수를 가져와 심었습니다. 과수원과 화훼원도 조성해 나무 별로 이름표를 꽂아 식물 교육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묘목을 재배하는 일에서 시작된 묘포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가면서 일반인들도 관람가능한 장소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37년(1904)에는 그 내부에 정식으로 식물 표본관을 설립하여 전문적인 식물 표본 수집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했고, 1911년에는 ‘임업시험장’을 창설해 타이완총독부 식산국 산하에서 타이완의 임업 경영 및 산림 자원의 조사 연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이쇼 10년(1921) 타이완총독부가 중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이때 임업시험장이 총독부 신산국 산하기관이 아닌 중앙연구소 산하기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업시험장이 있던 기존의 타이베이 묘포도 같은 해 1월 22일에 정식으로 ‘타이베이 식물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기존의 타이베이 묘포에서 하던 작업을 계속하는 것 외에도 타이베이 식물원은 유럽, 미국, 호주,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일대에 직원을 파견하여 다방면으로 수종을 수집하여 타이완으로 운송하여 재배하였습니다. 1930년경에 이르러 타이베이 식물원 내에 이미 1,120종의 식물을 심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외국에서 들여와 타이완의 학술 및 자연과학 교육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당시 중앙연구소 임업부 초대부장이었던 식물학자 료조 카네히라(金平亮三, 1882-1948)는 임업부장직을 떠나고 5년 후인 1933년에 메이지 말기인 1900년대 초 타이완에서 처음 나무를 조사했던 과거를 상기하며 “당시 실험 재료를 모으기 위해 자주 (타이완의) 산에 들어갔지만 나무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며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이완에서의 식물 조사 및 연구는 실제로 메이지 40년경(즉, 1900년대 전후)에 시작되었는데 1933년인 현재에는 매우 인기 있는 작업이 되었다”며, 이렇게 되기까지 자신 외에 타이완의 식물 조사 연구에 공헌한 다양한 학자들을 언급하였습니다. 즉 그의 회고에 따르면 타이완의 나무와 각종 식물들은 과거 체계적인 조사와 수집이 부족해 명칭을 붙이거나 그 삼림의 상태가 거의 파악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당시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삼림 전문가 역시 그 종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05년 타이완총독부는 자연계에 기초한 조사가 산업정책의 근간이 된다는 일본 학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조직적인 식물조사 사업을 단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몇몇 식물학자들이 파견되어 그 해 말 <대만식물지(台灣植物志, Enumeratio Plantarum Formosanarum)>라는 책으로 최초의 성과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타이완의 식물 연구는 도쿄제국대학, 타이완총독부 중앙연구소 임업부, 타이베이제국대학 등이 서로 연계해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1910년대부터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합니다. 

타이완 식물연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식물학자는 바로 사사키 슌이치(佐佐木舜一, 1885-1960)다. 일본 오이타 현 출신의 사사키는 무려 30년 이상 타이완 식물 조사, 연구 및 표본 수집에 전념한 학자로 그가 수집한 표본 수는 일본 학자 중 가장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그는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13,075미터의 신고산(현, 옥산玉山)를 타이완 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열대, 난대, 온대, 한대를 모두 포함한 기온대를 갖고 있어 4대 삼림을 모두 포함하는 장소임을 발견하고 신고산을 식물연구에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위치해 있음을 알린 식물학자입니다. 일반적인 저고도의 산림 식물조사와 달리 복잡하고 때로는 위험한 등반 과정을 거쳐야하는 신고산 식물대 조사를 사사키는 감행했다. 그는 실증적인 채집과 조사를 수행하기 위해 무려 12년간 477개의 새로운 식물을 수집해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사키는 새로운 식물 표본 채집뿐만 아니라 신고한 삼림대 각 벨트의 고도 경계를 정해 이 경계에서 식물들의 변화를 오랜 기간에 걸쳐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477개 종 중 타이완 고유종이 무려 235종이나 되어 지리적 위치 면에서 타이완섬이 오랫동안 다른 지역과 단절되어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즉 타이완 식물 세계의 독특함을 알리기에 충분한 조사 결과인 것이죠. 그의 연구는 타이완 식물조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총독부가 설치한 묘포가 점차 그 면적을 확대해가고, 묘목 재배뿐만 아니라 모수원, 화훼원, 연못, 정원 등을 조성하자 타이베이 시민들에게 있어 묘포는 “타이베이 신공원보다 더 많은 탐방을 즐길 수 있는 곳”이자 “기묘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점차 변모해갔습니다. 그리고 초기 일본 학자들의 타이완 식물 연구에 대한 열의와 노고는 타이완 식물과 삼림 연구에 단단한 기초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전쟁 기간 동안 식물원 단지 내의 각종 건설은 거의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나무들도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일본의 패망 이후 타이완으로 남진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에 넘어온 이후  계획적인 경영하에 타이베이 식물원 단지를 다시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새로운 묘목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늘날 타이베이 식물원 단지 내의 건물과 식물 종류는 일제시기 '타이베이 식물원'의 이전 규모를 훨씬 넘어섰고, 전체 식물 품종도 약 2,000여 종에 달하는 식물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식물원 안 작은 건물 안에는 식물원이 조성되기까지의 일제시기 역사와 주요 학자들의 공헌을 대중들에게 친절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식목일, 타이완의 청명절을 맞아 준비한 타이베이 식물원의 일제시기 역사. 역사를 막론하고 나무 한 그루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만주간신보>의 진행자 서승임이었습니다.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참고문헌 

吳明勇. 日據時期佐佐木舜一對新高山森林植物帶之調查 台灣森林期刊 臺灣林業34(2) , 2008.

타이베이식물원(台北植物園)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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