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주에 고군이 타이완에서 정착한 중전신촌(忠貞新村)을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주는 이어서 중전신촌 근처에 위치한 룽강모스크(龍崗清真寺) 및 타이완의 이슬람 공동묘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 타이완인에게 이슬람교가 매우 낯선 존재인데 게다가 국제이슈로 인해 이슬람교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우리와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현재 타이완에 있는 무슬림은 불과 5-6만 명 정도지만 예상과 달리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아닙니다. 원나라 시절 때 아라비아 상인이 이슬람교를 중국으로 들여왔는데 17세기 명나라의 군인 겸 정치가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군을 몰아내어 타이완에서 정씨 왕국을 세웠고 당시 타이완으로 온 군인 중 무슬림은 적지 않았습니다. 1725년 타이완의 첫 번째 모스크가 장화(彰化) 루강(鹿港)에서 지어졌으나 선교 인재의 부족으로 결국 도교 사찰로 재건되었습니다.
무슬림의 대량 이주는 1949년 장제스 정권이 타이완으로 철수한 시점부터였습니다. 무슬림인 중화민국 초대 국방부장관 바이충시(白崇禧)가 중국 윈난(雲南), 닝샤(寧夏), 신장(新疆), 간쑤(甘肅) 등 지역 출신인 무슬림을 데리고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또한 1954년 미얀마, 태국, 라오스에서 타이완으로 철수한 고군 중도 무슬림이 있습니다. 바이충시 부장의 추진으로 타이완 이슬람교는 현저히 발전되어 무슬림 인구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1958년 중국이슬람교협회가 타이완에서 재개되어 적극적으로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1980년대에 들어 바이충시 부장을 비롯한 권위있는 무슬림들의 별세 및 중화민국과 이슬람 국가들의 단교로 타이완 이슬람교의 발전은 점차 침체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배우자가 대량으로 타이완에 오기 시작해 타이완 무슬림 인구는 다시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교의에 따르면 무슬림은 허락된 음식, 즉 할랄(halal)푸드만 먹을 수 있는데 당시 타이완에서 할랄 푸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대부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나라에서 수입한 식품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2011년 타이완 정부는 할랄식품 인증제도를 도입했고 2022년까지 300여 개 할랄인증을 통과한 식당과 호텔이 있습니다.

할랄(halal) 인증 표시 - 사진: 타이완 할랄 추진 재단
201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 활동으로 무슬림은 차별을 많이 당하고 있는 반면 2022년 글로벌 무슬림 여행지수(GMTI)에 따르면 타이완은 비이슬람 합력조직 여행목적지(non-OIC destinations) 중 2년 연속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슬람교의 예배 및 집회 장소인 모스크가 많이 건설되었고 현재까지 타이완 전역에서 총 11개 모스크가 있고 공항, 고속철도역, 기차역, 일부 대학교에서도 기도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럼 타오위안의 첫 번째 모스크인 룽강모스크는 언제 지어졌을까요? 룽강모스크가 준공되기 전에 중전신촌에 살던 주민들이 타이베이모스크에 가서 예배해야 했는데 주민과 이슬람협회의 기부를 통해 룽강모스크는 드디어 196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중전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룽강모스크는 주민들의 중요한 모임공간과 예배장소가 되었습니다. 벽과 대문에 붙인 초록색 타일은 이슬람 문화 중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색깔로 평화와 희망을 의미하며 타이완에서 정착하게 된 무슬림들이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를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신앙 외에 교육은 모스크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입니다. 아랍어와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대한 수업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 배우자가 타이완에서 잘 정착하기 위한 중국어 수업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침 청명절인데 타이완인은 이 날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하거나 납골당에 가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죽음이란 생의 종말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으로 간주되어 시체를 태우고 영혼의 안식처를 소멸시키는 화장을 금지합니다. 몸을 잘 보관하고 다음 생을 맞이하기 위해 사망 24시간 이내 빠르게 매장해야 합니다. 바다(배)에서 사망할 경우 이슬람 제1의 성지인 메카를 향해 바다에 시신을 던지고 해장하는 것도 허락됩니다. 그리고 타이완에 이슬람 공동묘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타이베이 류장리(六張犁) 이슬람 공동묘지고 다른 하나는 가오슝(高雄) 푸딩진(覆鼎金) 이슬람 공동묘지입니다.
류장리 공동묘지라면 대부분 타이완인은 백색테러 피해자의 공동묘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해당 묘지에 이슬람 공동묘지도 있습니다. 1967년 타이완 가장 대표적인 무슬림인 바이충시 장군이 돌아가신 후 장제스는 류장리에서 그의 웅장한 묘지를 지었는데 해당 묘지는 타이완에서 보기 힘든 이슬람과 중국 문화를 융합한 묘지로 2013년 타이베이시청으로부터 문화재 자격을 받았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국가와 민족보다 종교는 언제나 1순위며 보통 초승달과 별이나 이슬람교의 신앙 고백 구절인 ‘샤하다’ 등 종교적 의미를 가진 기호를 사용하는데요. 바이충시 장군 묘지의 한가운데 이슬람 기호가 아닌 중화민국 국장을 그린 것은 대부분 무슬림에게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중국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만나는 좋은 증거입니다.

무슬림인 중화민국 초대 국방부장관 바이충시(白崇禧)의 묘지 - 사진: 위키백과
다음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수용하고 가오슝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인 가오슝 푸딩진 공동묘지는 공원으로 개건되기로 하여 2015년부터 묘지를 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장과 타이완의 주요 장례방식인 화장 모두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타이베이 류장리 공동묘지의 공간 부족 및 가오슝 푸딩진 공동묘지의 철거로 타이완 무슬림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떻게 무슬림의 장례 문제를 해결하는지 타이완 정부는 되도록 빠르게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민사회인 타이완은 예로부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모이는 나라인데 사람 모두 종교, 성별, 나이, 직업, 민족, 출신을 불문하고 이 아름다운 섬에서 평등하고 자유럽게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와 배우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타이완인은 자신과 다른 문화를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태국 도이매쌀롱에 갔을 때 처음으로 할랄인증을 통과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무슬림이 음식에 대한 엄정한 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한국에서 유학했을 때 무슬림인 말레이시아 반 친구와 함께 한국에 있는 할랄식당을 찾아갔고 무슬림들은 해외에서 편하게 식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께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할랄표시가 있는 가게나 식당을 볼 때마다 신경을 써서 특별히 유의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길거리에서 할랄식당을 찾는 무슬림을 보면 바로 다가가서 안내해 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죠?
엔딩곡으로 청명절 분위기에 맞는 한 곡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미성왕자’라 불리는 타이완 가수 린즈쉬안(林志炫)의 ‘떠나는 사람(離人’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林義宏,「看見臺灣穆斯林:政大張中復追蹤伊斯蘭教進入華人社會的軌跡」,人文.島嶼。
2. 認識清真認證,清真推廣基金會。
3. 吳琍君,「台灣勇奪新月評等-最包容穆斯林旅遊目的地獎、蟬聯萬事達卡GMTI銀牌」,中央廣播電台。
4. 龍岡清真寺,桃園觀光導覽網。
5. 黃偉雯,「全臺的十間清真寺中,座落於桃園的有幾間?」,故事StoryStudio。
6. 馬映卿,「墓地不足、傳承斷裂──禁止火葬的穆斯林社群,在台遭遇殯葬困境」,報導者。
7. 李易安,「白崇禧與六張犁:在白色恐怖受難者旁長眠的穆斯林上將」,Matters。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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