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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312, 남북한815

  • 2023.03.20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중화민국을 건국한 국부 손문(孫文, 손중산孫中山)선생.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양안312, 남북한815, 다른 체제, 같은 기념일-서로 다른 체제, 왜 이날은 같은 기념일일까

-2023.03.20.-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둔 타이베이와 베이징의 양안, 북위 38도 휴전선을 사이에 둔 서울과 평양의 남북한, 서로 같은 민족이었으나 20세기 중반부터는 적국이 되어버린 상호 다른 체제의 불편한 사이이다. 양안이나 남북한은 서로 정치적 또는 군사적 대치는 확실하지만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같은 역사와 언어를 썼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모종의 유사점은 존재한다.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던 중 최근에 양쪽이 지내는 특별한 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각지의 기념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국제 기념일과 전통 민속 명절을 제외하고 양안 사이에 또는 남북한 사이에 같은 기념일을 지내는지 정리해본 결과, 중화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국민의무교육 시기에서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도 ‘이날’을 공휴일로 쉬었었지만 그 후의 X세대 또는 더 늦은 M세대나 Z세대는 ‘이날’이 무슨 날인지 누구를 기념했던 날이었길래 예전에는 공휴일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여하튼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오래라서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다. ‘이날’이 무슨 날인지, 잠시 후에 본론에서 말씀 드리겠다.

남북한의 경우 국제 기념일과 전통 민속 명절을 제외하고 볼 경우, 매년 8월15일을 양측에서 모두 기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광복절이라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하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 주권을 되찾은 날로 인식한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경우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하여서 그덕에 해방을 한 것으로 세뇌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이 김일성의 항일운동 공로라고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양안간이 마찬가지로 국제 기념일과 전통 민속 명절을 제외하고 양측에서 같은 날 같은 명칭으로 기념하는 날이 있을까? 마침 하루가 있다. 매년 3월12일이다. 한국인에게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느껴지는 날이라 생각되는데 양안 모두 이날을 기념한다. 기념일 명칭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여겨지는데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색채도 짙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3월12일 이날은 중화민국을 건국한 국부 쑨원(이하 손문선생)이 타계한 날이기도 하며, 본래 중화민국 정부에서는 손문선생 서거일을 식수절(식목일)로 1928년에 정하였다. 참고로 1949년 국민정부가 타이베이로 임시 천도한 후 1965년 타이베이에서 궁정 양식을 본따 건설한 박물관은 지금 잘 알려진 국림고궁박물원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중앙박물원, 또는 ‘중산(中山)’박물원이라 이름했다. 여기에서의 ‘중산’은 바로 손문선생의 호이다.

중화민국 정부는 근대 중국역사에서 손문선생은 가장 먼저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자고 제창한 사람 중의 한 명이어서 중국국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당 총리 고 손문선생의 기일을 식목일로 하고 조림을 하자는 의안을 제기하며 3월12일을 식수절(식목일)로 제정하게 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건립하였는데 반세기 후인 1979년 2월, 당시 중공의 실세,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이 3월12일을 식수절(식목일)로 정하자고 제안한 후 같은 해 중공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결의 통과하며 3월12일은 식목일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화민국 정부는 3불 정책을 시행하며 베이징당국을 ‘중공’이라고만 불렀었던 시기라서 그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날은 중국국민당의 영원한 ‘당총리’로 추대되었고 중화민국을 세운 국부 손문선생의 기일이고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온 국민정부는 이날을 계속 식수절로 기념하였었기 때문이다.

중공은 이날을 그저 나무를 심고 임업을 발전시킨다는 단순한 목적으로 정한 게 아니라 손문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선생 생전의 유지를 받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다시 말해 서로 완전 다른 체제가 기념하는 식목일은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자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손문선생은 자기 편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각각 1928년과 1979년에 정한 기념일, 앞뒤로 51년의 간격으로 중공에서도 3월12일을 식목일로 정했다. 중화민국을 건국한 국부가 어찌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기념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우리는 어딘가 불편함도 있고 애매하기도 하며 무슨 의도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선 조금 더 거슬러 올러가 손문선생이 본격적으로 혁명에 뛰어들기 전 당시 청나라의 실세 이홍장(李鴻章)에게 국가발전에 관한 편지를 쓴 게 있다. 1894년 ‘上 李鴻章 書(이홍장에게 올리는 서한)’에 이런 글이 있었다. “급흥농학,강구수축(急興農學,講求樹畜)”은 중국이 강대해지는 개책이라고 제안한 것이 바로 나무를 많이 심어서…..라는 것이었다. 중화민국 건국 원년인 1912년 손문선생은 난징(南京)에서 임시대총통으로 취임한 후 곧바로 농림부를 조직하고 산하에 산림사(司=한국 중앙정부의 局 단위와 유사함)로 하여금 전국 임업 행정 사무를 관장하도록 하여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도록 기획하였다. 대총통에서 사퇴한 후에도 그는 임업 발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치수지본,재여흥림(治水之本,在於興林)’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손문선생이 1917년에 <민권 초보>, 1919년에 <손문 학설>, 1920년에 <실업 계획>을 각각 저술한 것을 나중에 묶어서 <건국방략(建國方略)>으로 출간했는데, 그의 <건국방략> 중에 중국 북부와 중부지역에서 대규모적인 식수를 통한 숲을 조성하려는 구상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 광저우(廣州)에서 연설을 할 때에도 홍수의 재해와 가뭄으로 인한 재앙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무를 많이 심어 숲을 조성하는 것이고, 그래서 전국적인 대규모적인 삼림을 조성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 혁명의 리더가 국토에 나무 심기를 적극 추진했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정부에서는 아무래도 손문선생을 현대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운 공신으로만 강조하다 보니 그랬다고 본다.

손문선생은 양안 모두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이 손문선생을 추앙하기 시작하는 데에는 분명 정치적 의도가 있는데, 중공은 손문선생을 ‘민주 혁명의 선행자’라고 공식 문서에 기록하여 불렀는데, 베이징당국이 우리의 기념일을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계승해 나가는 의도는 서로 같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이른바 평화통일의 길로 향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어느 한순간에는 섬뜩해지기도 한다.

참고로 국부 손문선생은 11월12일생이다. 1948년에 ‘국부탄신기념일’로 정하여 국정공휴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1966년에 11월12일을 ‘중화문화부흥절’과 ‘의사의 날’을 첨가하여 손문선생이 본래 중화문화 부흥에 힘썼고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또 장졔스(장개석)의 경우, 그는 10월31일생이다. 이날은 1979년8월에 ‘영민절’로 이름을 바꿨다. ‘영민’이란 ‘명예 시민’이란 뜻이고 영어로는 보통 ‘베테랑’으로 표기하고 있다. 명예 시민이라는 신분이 붙은 원인은 ‘영민’은 1949년 장졔스를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온 60만 명의 중국국민당 국군 장병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20세기 때 중국국민당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었기에 장졔스의 생일날 그들을 기념하는 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부합한다고 본다. 다만 이미 74년이 흐른 지금 현존하는 영민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장졔스는 1975년 청명절에 타계하였고 1940년대에 이미 4월5일을 ‘민족 성묘의 날’로 제정했었기 때문에 따로 명칭을 부가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손문선생이나 장졔스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도 없어지고 행사도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88년1월부터 2000년5월까지 중화민국 총통을 역임했던 리덩후이(李登輝)가 양안관계에 있어 탈중국화 전략을 실천하면서 손문선생과 장졔스는 후세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인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白兆美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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