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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골목길 시리즈] 1. 녹음이 우거진 역사의 길, 칭티엔제(青田街)

  • 2023.02.15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칭티엔제(青田街)에 위치한 청전칠육(青田七六) 노옥과 마당. 오래된 역사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도시의 공간은 속도가 참 빠르죠.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에서 일상을 보내고 한 건물에 다세대가 층층이 쌓인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 사는 도심 속 우리들은 점점 나만의 사적인 공간, 차가 아닌 걸음의 속도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정주할 수 있는 곳이 적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느린 공간, 보행자 속도에 맞는 공간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느린 공간, 사적인 공간을 향한 욕구로서 속도가 빠른 자동차에 빼앗긴 큰 도로 뒷쪽, 사람의 속도에 맞는 골목길들로 도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사람들은 차선 폭이 좁거나 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길을 두 발로 걸으며 그 길의 정취를 몸소 느끼는 경험을 찾아나섭니다. 그 골목길에서 백색 소음으로부터 차단된 나만의 작은 카페를 발견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죠.  한국 서울의 경리단길이나 삼청동길, 최근 몇 년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과 그 주변 종로 3가 골목길 등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도시 사람들은 작은 골목길을 걷고 자신의 속도를 회복하며 잠시 잊고 있던 ‘나다움’을 상상하며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건축학자 유현준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의 체험에는 가로수의 크기, 인도의 폭, 평행해서 가는 차도의 폭, 거리에 늘어선 점포의 종류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이 중 경험의 밀도가 중요” 하다고 언급하며,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미국 도시보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부터 생성된 유럽도시에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과 도로의 공간감, 우연성과 이벤트가 넘쳐난다”고 설명했죠. 

타이베이 도심은 좁은 폭의 골목길로 가득합니다. 1차선 도로 폭의 길 한켠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의 보행길이 있는 골목길 양 옆은 오래된 나무와 5층 이하의 가정집 건물 그리고 작은 상점들로 차있습니다. 건축학자 유현준이 언급한 ‘휴먼 스케일’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골목길이 타이베이 도심에는 도처에 있습니다. 서울처럼 타이베이 역시 높고 화려한 마천루 뒤 작은 골목으로 점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것에서 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경쟁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천천히 발견할 수 있는 곳, 기계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의 속도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저 역시 타이베이 곳곳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햇살이 좋은 날,  처음 가보는 골목길을 두 발로 걸을 때 느끼는 설레임과 골목길 마다 서로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여느 유럽 여행 못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하죠. 그래서 앞으로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에서는 ‘골목길 시리즈’를 통해 제가 애정하는 타이베이 도심의 골목길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타이베이 골목길은 칭티엔제(青田街)입니다. 허핑동루 1단(和平東路一段)과 신성난루 2단(新生南路二段) 교차로 안쪽에 위치한 칭티엔제의 동쪽에는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 서쪽에는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國立台灣師範大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안삼림공원 맞은 편에는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이 나란히 있는데 그 뒷편이 바로 칭티엔제입니다. 칭티엔제는 제가 2017년 타이베이에 유학을 와 가장 처음 발견한, 그래서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골목길입니다. 논문과 연구에 지친 저는 가벼운 청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햇빛을 쐬면서 칭티엔제를 두 발로 걷곤 했는데, 칭티엔제는 항상 기분 좋은 영감을 선물했습니다. 그 때 깨달았죠. 몸을 움직여야 비로소 피어오르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요. 

칭티엔제에는 다른 여느 골목길보다 유독 오래된 나무가 많아 골목길이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합니다. 칭티엔제 거리를 골목을 의미하는 행정구역 단위인 샹(巷)으로 보다 작게 나눌 수 있는데요. 칭티엔제의 7번째 골목, 즉 7巷에 자리한 오래된 1층 목조 건물이 눈에 띕니다. 건물은 작은 마당을 끼고 있고, 마당에는 오래된 나무는 물론 다양한 식물과 꽃 등 원예가 잘 되어 있는 정원과 작은 연못이 있고 낡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어 건물의 역사를 짐작케 합니다. 청전칠육(青田七六, 칭티엔치리우)라는 이 곳은 현재 일본식 요리 전문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사실 역사가 꽤 오래된 건축물이었습니다. 바로 국립타이완대학의 전신인 타이베이제국대학에 재직한 홋카이도 출생 일본인 교수 아다치 마사시(足立仁, 1897)가 지은 자택이었습니다. 1928년 타이베이제국대학 조교수에 부임하자 아다치는 1931년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곳에 이 건물을 준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다치 교수는 타이베이를 떠났고, 중국 랴오닝성 출신 마팅잉(馬廷英, 1928-1979)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가 1945년에 이 주택에 들어와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골목길을 산책하다 발견한 이 건물이 이렇게 풍부한 역사가 있는 타이베이시 의 고적(古蹟)이었던 것입니다. *2006년 창립된 황금종자문화사업유한공사(黃金種子文化事業有限公司)에서 2010년 이 건물 복원 계획을 시작해 2011년 대중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적의 풍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각각 일본과 중국에서 건너온 대학교수들이 거주한 장소였던 만큼, 이 곳 내부는 당시 학자들의 흔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바닥을 천천히 밟으며 건물 안을 구경하다 보면 두 학자의 흔적과 함께 마치 내가 과거 일제시대로 돌아가 있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역사 깊은 목재 노옥을 뒤로하고 다시 칭티엔제 골목길로 향합니다. 그럼 골목길 옆 1층에는 감각적인 찻집이나 카페가 자주 등장해 시선을 끕니다. 칭티엔제 골목길의 카페는 타이베이 도심의 다른 카페보다 여유가 있고, 공간감이 살아있으며, 푸른 나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있는 골목길의 정취와 그곳에서 자란 식물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 감각의 상점들을 차린 것이 칭티엔제 골목길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칭티엔제에는 작은 가게들이 큰 나무 아래 옹기 종기 모여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차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늑하고 포근하며 친환경적인 칭티엔제, 이 골목길을 산책하는 일이 그래서 즐거웠나 봅니다. 

엔딩곡으로는 타이완 작곡가 리신윈(李欣芸)과 기타리스트 동윈창(董運昌)이 함께 작곡한 2004년 곡 ‘산책하는 치맛자락’(散步的裙擺, A Walk in the Field)입니다. 이 곡은 산책을 주제로 한 앰비언트 음악으로 가사 없이 타이완 기타리스트 동윈창(董運昌)의 클래식 기타 핑거링 반주에 맞춰 피아노와 현악기, 관악기가 연이어 반복하는 선율이 매력적인 곡입니다. 가까운 동네 작은 골목길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의 진행자 서승임이었습니다. 

-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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