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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 제주43사건을 연상케하는 타이완228사건

  • 2022.02.28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타이베이228평화공원 내 228사건 희생자 이미지 전시 벽. -사진: jennifer pai

광주민주화운동, 제주43사건을 연상케하는 타이완228사건 요약

-2022.02.28.-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세계 대부분의 국가의 근현대사에서는 민주주의 운동의 흔적이 남아있다. 1911년 신해혁명 후 아시아에서 최초의 공화국을 세웠던 중화민국은 이데올로기와 권력 다툼 등 여러 문제들로 인해 본래 난징에 수도를 뒀던 중화민국은 장제스 총통의 지휘 하에 1949년 타이베이를 임시 수도로 하며 타이완에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지금 말하는 타이완지역이란 타이완섬을 비롯해 펑후제도, 진먼열도, 마주열도 등을 하나로 묶어서 타이-펑-진-마(臺澎金馬TPKM)를 가리킨다. 1971년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중국’ 대표권을 박탈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후 반세기 동안 우리는 자유중국, 타이완지역, 중화타이베이, 타이베이당국 등으로 불렸고 국제기구에 속하는 지금의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했을 때는 관세영역으로 이름을 하였다. 즉 앞에 언급한 TPKM이었다.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냉대를 받았던 타이완은 20세기 후반 글로벌 무역에서 주문자위택생산 등의 제품을 시작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고, 21세기에는 특히 반도체산업으로 국제상의 중시를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제무역 외에도 민주주의 과정에서 타이완에 정착한 중화민국은 대다수의 국가처럼 피를 흘리거나 대혼란을 겪은 후에 민주주의체제를 얻어낸 게 아니라 무혈, 고요의 이성적인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민주주의체제의 모범생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학생운동에 관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타이완의 경우 대학생들의 대규모적인 정치적 운동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만년 국회를 타파하는 데에는 당시의 반체제 인사들이 농민 항거 운동을 주도하면서 사회대중들 앞에 폭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농민에서 시작해 학생과 사회대중의 대규모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타이완의 정치체제는 드디어 진정한 민주주의체제를 실행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지칭한 농민운동은 1988년5월20일 타이베이메인역(기차역)에서 농민들이 결집해 경찰과 정면 충돌을 했던 날을 기점으로 하고 있으며, 이때는 마침 38년 동안이나 유지해왔던 ‘국가동란평정시기’라는 명목의 계엄이 해제된 후였다. 처음 보는 대정부 항의라서 너무 충격적이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필자는 바로 타이베이메인역 앞 중샤오서로(忠孝西路) 찻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항의군중이 대치하는 한쪽에 있었다. 만약 그 당시에도 휴대폰이라는 게 있었다면 사진 몇 컷을 찍었으리라 생각된다.

중화민국 국가 원수는 늘 타이완의 민주주의, 경제무역, 문화의식 등에 대해 자부하며 대국민담화이든 국외 정부 내빈과 회동할 때이든 이러한 성과를 자랑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얻어낸 게 아니며, 이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걸 늘 상기하고 있다.

오늘은 마침 2월28일, 중화민국의 국정공휴일이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타이완의 2월28일에 대해 완전 생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 만큼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상호간의 이해가 증진되었다고 생각된다.

타이완에서 발생한 228사건은 1947년2월27일 저녁무렵 담매 매매 여인을 검거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선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겠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항복했다. 당시 한반도는 해방된 기쁨을 맞이했다. 타이완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완 시민들은 조국의 품에 안겨 새로운 시대로 매진한다는 기대감에 환호하였다. 하지만 겨우 1년 반 만에 심각한 통화팽창 사태가 일어났고 타이베이시에서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집권층은 시민을 홀대하며 억눌렀고 불경기에 실업률은 심각하여 민.관의 관계가 극히 악화되었으며 대중들 마음 속에 쌓인 노기는 1947년에 이 사건으로 터지고 말았다.

1947년2월27일 저녁무렵, 사찰원이 천마다방 앞에서 불법 담배를 판매하던 여성(린쟝마이林江邁)을 적발했을 때 그 여인이 사정을 봐달라고 하려했지만 사찰원이 밀치며 부상을 입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민중들이 사찰원을 둘러싸자 당황한 사찰원은 총을 쐈고, 이때 집 앞에서 구경하던 청년이 총에 맞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찰원은 혼란 속에서 달아나니 민중들이 범인을 체포해달라며 밤을 새며 경찰국을 포위했다.

사건 발생 이튿날 아침, 타이베이시의 주요 번화가이며 상점이 즐비한 다다오청(大稻埕) 일원과 늘 신도들로 붐볐던 멍자(艋舺, 지금의 萬華區완화구) 소재 용산사(龍山寺) 일원은 이미 술렁거렸다.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하고 청년들은 가두 연설을 진행하였으며 집집마다 문을 닫아 걸고 파업에 동조했다. 타이완 역사상 전례 없는 타이베이시 전체가 파시.파업에 들어가면서 일파만파로 일이 더 커졌다.

시위군중들은 전매총국으로 향했다. 격노한 시민들은 사고를 친 사찰원이 재직하고 있는 전매국 타이베이 지국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파괴하고 직원을 구타하며 술.담배.성냥과 모든 물품들을 건물 밖으로 옮겨와 불살랐다. 

븐너힌 민중들은 장관공서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장관공서로 향했다. 뜻밖에 기관총으로 난사 당하여 그자리에서 3명이 사살됐다. 이러한 무차별 난사로 인해 민중들은 몹시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되었고 청원 대열은 사방으로 흩어져 중국대륙에서 1945년 이후에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을 아울러 가리키는 외성인(外省人)을 잡아 호되게 때렸다. 1945년 광복 이래 쌓였던 불만과 이번 사태에서 생겨난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타이베이성(城) 안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날 오후 항의 군중들은 지금의 ‘228기념공원’인 신공원(총통부 주변에 위치하며, 타이베이메인역 맞은 편 소재)에 집결하여 민중대회를 열고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하며 타이베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대외 알렸다. 이 라디오방송국은 마침 공원 안에 있었다.

2월28일 오후 3시, 경비총사령부는 정세가 위급하다고 여겨 타이베이시에 계엄을 선포하고 군인과 경찰들을 동원해 시가를 순찰하면서 타이베이성 길거리에서 총기로 난사하기 시작해 많은 시민들이 무차별 사살되었는데, 이중에는 전매국, 철도관리국, 교통국 앞에서 무고하게 사살 당해 죽거나 부상한 시민 수가 가장 많았다.

228사건의 발생 배경과 원인은 행정장관공서체제의 특수화, 정치 농단과 접수 폐단, 경제 통제와 민생고 및 사회 불안과 문화 격차 등 크게 4가지 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오늘 방송에서는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70여 년 전 그 시대에 어느 누가 공직자에게 당했다고 해서 섬 전체가 들끓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1945년 이후 1년여 동안 통치계층이 시민들 기대와 너무 멀었던 게 하룻밤 사이에 터졌다고 할 수 있다. 이중에는 1947년 연초 시점을 되짚어 볼 때, 중국대륙에서는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간의 내전이 한창이었다. 전쟁이 나면 일상은 깨지게 마련이다. 이중 전반적인 경제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경제가 악화하는 현상은 제일 먼저 통화팽창으로 드러난다는 걸 잘 아실 것이다. 이 외에 경제를 통제함에 따라서 그때 실업문제를 야기했다. 당시의 실업인구는 약 30만에서 50만으로 추정되는데 따라서 타이완섬에서의 실업률은 약 5.0% 내지 8.3% 수준이었다.

1947년 당시 타이완에서의 경제통제정책에는 금융의 농단, 물품의 전매 정책이 뒤따랐다. 민생물자인 소금, 설탕, 석회 등도 전매국이 장악하였고  영업이익이 되는 수출 상품에 대해서는 무역국을 설치하여 전적으로 관리하여 타이완의 농업과 공업 상품의 생산.판매와 수출을 농단했다.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도 많지만 정치는 국민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미래의 국가 원수나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의원 또는 지자체장 등을 뽑을 수 있는 건 천만 다행이다. 그래서 더더욱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책임감을 갖고 투표를 해야할 것이다.

(타이베이 228국가기념관의 최신 전시)

타이완 각지에 228기념 기관이 설립되었고 타이베이시에서는 이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있는 기념관이 있다. 타이베이시립 명문고 지엔궈(建國)고교, 국립역사박물관, 타이완예술교육관, 식물원/임업시험소진열관, 우정(우체국)박물관 및 20세기 유명 현대주의 조소가 양잉펑(楊英風)미술관 등 교육,문화,예술 기관과 매우 인접한 곳에 위치한 228국가기념관은 1931년에 낙성된 91년된 건축물로 이곳에서 228사건 관련 상설전을 관람할 수 있다. 나중에 타이완에 오시게 되면 타이베이 소재 228국가기념관 방문을 추천드린다. -白兆美

원고. 보도: 백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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