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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즐겨하는 타이완 아동문학 대가 - 린환장

  • 2022.01.21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아동문학 대가 린환장(林煥彰) - 사진: RTI

린환장(林煥彰)은 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 국가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거나 행사를 참여한 경험이 여러 번 있는 타이완 대표 아동문학가 중 하나입니다. 그의 아동시는 타이완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기도 합니다. 비록 아동문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지만 린환장은 최초에 현대시를 쓰는 작가로 할동하고 있었습니다.

린환장은 1939년 타이완 동북부 이란(宜蘭)현 자오시(礁溪)향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정 생계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타이완 비료 회사(Taiwan Fertiliser Company)에 취직했습니다. 당시 타이완 비료 회사는 직원 교육을 매우 중요시했던 회사로 희극 동아리, 서양화 동아리 등 다양한 동아리가 있었는데 린환장은 문학 동아리에 가입해 처음으로 시를 접하게 됐습니다. 1960년 린환장은 군에 입대하고 중화 문예 통신 교육 학교 (中華文藝函授學校) 현대시반에서 수학을 하고 문학 창작을 시작했으며 1964년 한축된 언어를 많이 사용해 때로는 지나치게 회삽해질 수 있는 모더니즘 문학을 반대하고 시어의 명료함을 추구하던 문학 잡지 《포도원시간(葡萄園詩刊)》에 사행시 <구름(雲)>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그가 사용한 필명은 무윈(牧雲, 즉 목운)이었는데 이는 그의 절친인 사무(沙牧)의 牧자와 친구이자 《포도원시간》의 편집장인 란윈(藍雲)의 雲자를 따서 만든 것입니다. 그가 1967년에 발표한 첫 시집의 제목에도 이 필명이 들어가 있는데 제목은 《무윈초집(牧雲初集)》입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1965년부터 1970년까지 향토문화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립시사(笠詩社)’라는 문학 단체에 참여했고, 1971년에는 문단 후배들과 함께 민족의식과 사회의식을 중요시하던 ‘용족시사(龍族詩社)’를 창립해 5년 간 타이완 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여러 개 문학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문학 유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린환장은 시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항상 삶을 관찰하고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가장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데 노력해 왔습니다. 린환장은 10년 동안 정열을 바쳐 현대시 창작에 전력했으나 1974년에는 아동시 창작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비록 데뷔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아동시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중화 문예 통신 교육 학교 수업에서 타이완 아동문학 대가 양환(楊喚)의 작품을 읽었을 때 이미 아동시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동화 수법으로 창작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타이완 아동시의 발전은 양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환은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인 25세에 사망했고, 생전에 불과 20편의 아동시를 지었지만 이 20편 아동시는 후대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아동시인에게는 모범으로 준중과 숭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후계자가 없기 때문에 아동시의 발전은 10년 넘게 중단됐고, 1977년이 되어야 다시 시작됐습니다. 당시 황지보(黃基博)와 수전민(蘇振民) 이 2명 교사는 이들을 위한 시를 많이 쓸 것을 제창하며 스스로 수업에서 아이에게 시를 쓰도록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동문학 작품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교사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장르를 쓰든 작품이 담고 있는 교화적인 색채가 매우 강하고 심지어 교육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린환장은 어린이를 위한 시를 쓰자는 생각은 좋았지만 교육적인 목적 외에도 시의 예술성과 문학성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10년의 시 쓰기 경험을 가지고 아동문학 창작에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린환장은 1976년 4월 첫 아동시집 《동년의 꿈(童年的夢)》을 발표했고, 동년 12월에는 두번째 아동시집 《여동생의 빨간 장화(妹妹的紅雨鞋)》를 냈습니다. 그는 이 두 권 시집으로 1978년 '중산문예상(中山文藝獎)을 수상하며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아동문학가로 아동 문학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영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린환장은 초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아동문학에 더욱 힘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지속적인 아동시 창작과 더불어 아동시의 교육과 홍보를 추진하여 1980년 시인 쉬에린(薛林)과 수란(舒蘭)과 함께 ‘뻐꾸기 아동시학사(布穀鳥兒童詩學社)’라는 문학 단체를 창립하고 계간지(季刊誌)를 통해 수많은 우수 아동시들을 대중에게 소개했습니다. 뻐꾸기 아동시학사와 그의 간행물은 아동 문학이 정식 교과 과정에 아직 포함되지 않았을 때 아동시가 보급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린환장 주도 하의 뻐꾸기 아동시학사는 당시 타이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동시문학 단체였습니다. 뻐꾸기 아동시학사 해체 후, 린환장은 1983년 12월 ‘중화민국 아동문학회(中華民國兒童文學會)’를 조직하고 《아동문학가(兒童文學家)》라는 계간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면서 타이완의 아동문학 및 일러스트 예술을 세계로 알렸습니다. 그는 이미 퇴직했으나 현재는 여전히 아동시 발전 및 홍보를 위해 분주하고 있습니다.

린환장은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 즉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취급하며 그들을 ‘진정한 독자’로 여겨 시를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는 아동시를 창작할 때 항상 시의 내용이든 형식이든 모두 어린이의 정서와 감성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린환장의 작품의 특색은 신선하고 참신한 생각이 담겨 있어 아이들로 하여금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의 회화성(繪畫性)’을 추구하지만 그는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과 연결돼야 하고 실제와는 너무 동떨어져 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으로 만들지 말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린환장의 시를 한 편 골라서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동생의 빨간 장화(妹妹的紅雨鞋)>

여동생의 빨간 장화는 妹妹的紅雨鞋,

새롭게 산 것이다.是新買的。

비가 오는 날에 下雨天,

그는 항상 이 장화를 신고 她最喜歡穿著

밖으로 나가서 논다.到屋外去遊戲,

나는 집에 있어 我喜歡躲在屋子裡,

유리창을 통해 그 장화를 보는 걸 즐겨 한다.隔著玻璃窗看它們

그들은 헤엄쳐 오고, 헤엄쳐 가고 游來游去,

마치 어항 속의 한 쌍의 像魚缸里的一對

빨간 금붕어 같다 紅金魚

비 속에서 달리며 노는 여동생의 빨간 장화를 어항 속의 빨간 금붕어로 비유하는 게 정말 신선한 것 같습니다. 시의 전체 내용도 매우 귀엽고 이해하기 쉬어서 들으면서 머리 속에 저절로 화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린환장의 아동시는 너무 꾸며진 내용이 없고 상당히 단순하고 속박하지만 그의 따뜻한 동심이 가득한데요. “내가 생각해냈던 글자들은 모두 겨울밤의 별이 되었다”라고 그는 《내가 생각해냈던 것(我想到的)》이라는 시에서 쓴 것처럼 그의 한편 한편의 아동시는 모두 별이 되어 아이들의 상상의 은하수에 빛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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