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0-TKC
반세기 전에는 주로 ‘삐라’로 불렸던 ‘전단’, ‘삐라’가 주는 어감은 그 시대를 반영하여서 단순한 광고성 전단이 아닌 심리전에 이용하는 도구로 간주되었다. 타이완에서는 이러한 ‘전단’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한국이나 북한에서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전단을 날려 보냈다는 뉴스는 특히 북한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의 5월2일 담화로 이슈가 되었다. 김여정의 살벌한 언사는 여전했다. 일반 타이완인들은 이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인데, 작년에 개성공단에 설치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뉴스를 접하고 ‘아~ 북한이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바로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내 안보와 한반도 정세에 관심을 갖는 타이완 사람이라면 김여정의 반응에 한 번쯤 이 뉴스를 읽어보게 된다.
일단 대북전단 살포와 김여정의 ‘경고’를 떠나 순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에 외부의 정보를 알리려고 전단을 보낸 것은 자유라고 여겨지며, 김여정이 유독 전단 살포에 대해서 강경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그런 전단이 북한 정권에 분명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단이 아무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라면 북한 지도부의 2인자로 불리는 김여정이 직접 나서서 반발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금년 3월30일을 기해 한국에서 일명 ‘대북전단 금지법’. 즉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시행됐다. 그래서 대북전단을 남북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보낼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한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에 반발하는 단체들은 이건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집권당은 남북 분단선 접경지대의 주민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정부와 국민이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슬기롭게 잘 처리해 나갈 것이라 기대하며, 오늘 ‘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는 현대사 속의 양안 대립, 그리고 ‘심리전’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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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서의 중화민국 ‘심리전’은 일본 군국주의의 중국대륙 침략으로 인해서 중요시되었었다. 1931년9월18일, 일본이 ‘918사변’을 일으켜 침략 100일 안에 중국 동북지방을 점령했고, 1932년 3월1일 일본제국의 참모본부와 관동군이 중국 동북지방에 이른바 ‘만주국’이라는 새로운 정권을 건립하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아이신젤로.푸이를 만주국의 허수아비 황제 자리에 올려놨다. 1937년 7월7일, 일본군이 ‘77사변-노구교사변’을 일으키며, 베이징과 티엔진 지역으로 침입해 중국의 화북지방은 곧 함락되고 말았다. 당시 중화민국 수도는 난징에 있었고 대일본 전면항전을 선언했다. 수도 난징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고 참혹한 ‘난징대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수도 난징을 빼앗긴 중화민국은 후방인 스촨성 충칭으로 후퇴하며 임시 수도로 정했다. 바로 충칭에서 각종 언어의 중화민국 대내외 방송을 했다. 포화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한 XGOY이라는 국명으로 한 대외 방송은 당시 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선전용 방송이었다.
이 부분은 여기까지 간략하게 말씀드린 후, 1949년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국공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베이로 임시 수도를 정했다. 중국공산당은 같은 해 10월1일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했다. 비록 그 후 적어도 20세기 90년대까지 중화민국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었지만 타이완해협을 두고 두 개의 정권이 따로 유효 관할지역의 국민을 통치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서로 다른 체제의 국가를 발전시켜왔다.
우리가 베이징당국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그리고 베이징당국은 타이완을 이른바 ‘수복’하여 온전한 중국으로 만들고자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타이완해협 양안간에도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었다. 그때 총포,도검,화약을 이용하거나 육박전, 심리전이라는 차원의 전단 살포에도 열을 올렸었다.
타이완섬과 중국대륙 사이에는 타이완해협이 있다. 그런데 타이베이당국의 실질 관할 구역 중에는 진먼제도와 마주제도가 있다. 이들 섬은 반세기 동안 양안간 대치에서 우리의 최전방이었다. 예전에 군에 입대하여 신병 훈련 후 혹여나 진먼이나 마주로 임지 발령이 나면 군 복무자 가족은 거의 초상집 같았을 정도로 두려움을 주는 군사기지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전방 군사기지 진먼과 마주는 타이완섬보다는 중국대륙 푸젠성과 훨씬 더 가깝다. 타이완섬에서 중국대륙과 가장 가까운 직선 거리는 약 130킬로미터이다. 하지만 진먼에서 타이완섬과 가장 가까운 직선 거리는 200킬로미터가 넘는다. 진먼섬과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는 겨우 1.8킬로미터이며, 마주섬과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는 8킬로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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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해협 양안간의 심리전을 말하자면 당연히 1949년 이후에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내전으로 국토는 황폐하고 양측 국민은 피폐해진 상황이어서 총포를 이용한 전투는 잦았고 심리전 차원의 전단 살포는 드물었지만 실질적으로 확성기 방송, 라디오방송, 바닷물을 이용한 표류 방식으로 물품을 보내거나 전단을 살포하는 등의 방법은 존재했었다.
타이완에서 20여 년 동안 늘 본토 수복의 염원을 품고 타이베이에서 생을 마감한 장제스 총통은 1959년 집권 중국국민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심리전’의 정치전을 적극 전개하자고 강조하면서 심리전이 국군 내부에서 특히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그때 국방부에서 진먼과 타이완 두 곳에 심리전 중대를 설립하였고, 해외에 분대도 하나 설립했는데 여러분께서 들어보셨을지 모르지만 당시 한국에 우리의 심리전 분대를 설립했었다.
풍선을 이용해 중국으로 전단을 보내는 건 주로 진먼에서 담당했다. 1962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진먼섬을 방문할 때 풍선을 이용해 대중국 전단살포를 하는 등 당시 동맹국 고위층이라면 한 번쯤 진먼을 방문해 망원경으로 중국대륙을 바라보며 심리전 방송이나 전단 살포에 참여를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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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간의 전투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전쟁 중 1949년의 구닝터우 전투와 1958년의 823포전을 들 수 있다. 이 두 번의 전쟁은 타이베이당국이 지금까지도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진먼 구닝터우 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2437명이 전몰되거나 실종됐으며, 3700명의 장병이 부상했다. 인민해방군은 5175명이 사망하고 3873명이 포로로 잡혔다.
823포전은 진먼과 마주 및 대륙 남동부 연해 일대에서 벌어졌는데, 이름 그대로 포격전쟁을 주로 하며, 기타 해군과 공군의 교전의 전술 행동도 취했었다. 1958년 8월23일부터 10월5일 사이 44일 동안 거의 매일 대포가 왔다갔다했고, 그 후 20년 동안 ‘격일제’로 서로 대포를 쏘며 상대방을 교란시켰다. 비교적 심리전에 가까웠다. 이러한 대포 포격전은 1979년 1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과 수교하면서 중단되었다. 참고로 1958년8월23일 저녁 6시30분에 발발한 ‘823포전’은 포전 시작 2시간만에 총 3만1,757발의 152구경과 172구경 이상의 대포와 유탄이 겨우 150제곱킬로미터 면적의 진먼섬에 떨어졌고, 823포전 첫날 총 5만7,500여 발의 대포가 날아들어와 진먼을 초토화했다.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 두 번의 전쟁을 겪고 난 후, 중국은 이어진 문화대혁명으로 내부 투쟁과 숙청에 바빴고, 타이완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전제주의에 가까우나 기타 경제와 문화 등 방면의 발전은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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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대북전단살포와 관련해서 미화 1달러 5천 장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불짜리 지폐가 북한 주민의 환영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본다. 그럼 해협양안간이 심리전을 벌일 때 어떠한 내용의 전단을 보내고 또 어떠한 물품을 보냈었을까?
전단 내용은 청취자님도 짐작하셨겠지만 상대방의 정권의 ‘악행’을 알리며 우리가 더 좋다라는 내용은 당연히 들어간 선전 용어이고, 이 외에 ‘생명안전’, ‘거액의 상금’, ‘직업 선택의 자유’ 등 보장한다는 내용이 대부분 들어가 있으며, 풍선을 이용해 날려보내거나 바닷물에 표류하는 방식으로 물품을 보낼 때의 내용물을 보면:
타이완에서 중국대륙으로 보내는 것 중에 의류, 사탕, 통조림, 과자, 초콜릿, 타이완 특산품 그리고 라디오 수신기는 중국대륙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하며 또한 가장 선호했던 물품이라고 하며;
중국에서 타이완 쪽으로, 실질적으로는 진먼과 마주 제도로 보내오는 물품은 특히 고향을 그리워할 대륙 출신의 장병들의 향수를 달래준다는 구이저우 마오타이주(술), 상하이 중화연(담배), 진화 중국식 햄, 푸지엔 티에관인 차, 시후 룽징 차 등 중국 각 지방의 특산을 주로하고 있다. 물질이 결핍한 시대에 심리전으로 오갔던 각종 토산품은 양안간의 무료 물자 교류회 같은 느낌이다.
‘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현대사 속의 양안 대립, 그리고 ‘심리전’-jennifer pai
원고.보도: 백조미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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